제2의 전성기,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박항서 감독.

 

그는 누구일까

 

 

 그는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데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복무 이후 럭키금성 황소에서 1984년부터 1988년 까지 7년 간 의

 

선수생활을 했습니다.포지션은 미드필더 였습니다.

 

은퇴 이후 박항서 감독은 코치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가 대중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부터인데요.

 

그때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사령탑을 맡기로 결정된 때 였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코치 였던 그는 한일 축구 정기전에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는데요.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의 자질을 미리 알지 않았나 라느 생각이 듭니다.

 

코치의 역할을 충실히 하던 그가 국민들의 뇌리가 강하게 각인된 사건이 있었는데요.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 달려가

 

품에 안겼던 코치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습니다.역사에 기록된 유명 인물들은 대부분

 

우여곡절을 겪죠.

 

16년전 아시안게임, 코치로서 활약을 했던 그는 감독직을 맡고 부산 아시안게임에

 

나가게 됩니다.

 

당시 선수진으로는 박지성,이천수,이영표,이운재 등 최강의 라인업이 였고

 

그 만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 부산아시안 게임 동메달이란

 

성적을 거둔 박항서 감독은 감독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k리그에서 감독을 했었는데요.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박항서 감족은 학연 지연이 없었고 축구협회와  마찰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그가 말하길

 

"개인인 감독과 조직인 협회가 맞선다면 개인이 이길수 없다.

앞으로 축구협회와 관련된 일은 절대 할 마음이 없다."

 

우리나라 스포츠 관련 협회는 비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죠 ㅎㅎ

 

특히 빙상연맹은 말할 것도 없고, 축구에고 비리가 엄청 많다는 것은

 

축구하는 친구 놈들에게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는데요.

 

박항서 감독님도 그에 질려 버린것인 아닐까 합니다.

 

8월 29일 오후 6시에 베트남-대한민국 남자 준결승 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어딜 응원할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저는 박항서 감독님께 한표 걸겠습니다.

 

고난와 역경이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박항서 감독의 인품은 이미 유명합니다.

 

"파파 리더쉽"

 

으로 그의 인기느 하늘을 찌르는 중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이미 신급 대우를 받는 다고 합니다.

 

파파 리더쉽은 말그대로 아버지 처럼 리드를 하는것이죠.

 

그 예로 박항서 감독은 벤치에서는 불같은 성격이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아버지처럼

 

선수들 챙긴다는 후문입니다.

 

 

박항서 감독님이 직접 베트남 선수들에게 발 마사지를 해주는 모습입니다.

 

그외에 부상 당한 선수에게 포옹을 해준다거나 등등 베트남 사회에서 박항서 감독의 인품은

 

매우 훌륭하게  평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박항서 감독님이 성공한 비결은 바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우리나라 정치인 들 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한것이 아닐 것 입니다.

 

리더란 그 분야릐 실력도 있어야 겠지만 인간관계, 즉 사람들 과의 소통,

 

인지도가 뛰어 나야하는 법이지요.실력만 좋고 사람들 차이에서는 욕을 먹는 다면 그는

 

좋은 리더가 아닙니다.

 

박항서 감독은 실력도 뛰어나지만 사람 대 사람 으로서 베트남 선수들을 아울렀기에

 

베트남 선수들도 그의 말에 따라 이런 결과를 낼수 있었지 않을까요.

 

Good bye my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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